關於這部電影

假如愛有如果

2026 · Lee Chang-dong

評論

사랑보다 가능과 편리 그리고 편견만이 보인다면

땅따코觀眾★★★★★5.0

· 4 分鐘

가능한 사랑이란 제목이 가슴에 닿는다.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내가 할 수 있는 사랑과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그저 내가 가능한 선까지 가능한 영역에서만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란 원대한 개념으로 볼 때 위선적이기도 하다. 사랑은 본래 무언가를 뛰어넘는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다.

간혹 어떤 것이 미치게 좋아도 사랑은 아니라 부정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 돌이키게 되고 곱씹게 되는 순간은 단연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들을 나도 모르게 행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니 가능한 영역 안에서만 시간과 마음을 쓰는 움직임은 결국 사랑인지 아닌지 의심받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예지의 얼굴을 보는 일이 부끄럽고 힘들었다. 예지의 위선 어린 시선이 나의 것과 아주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그랬다. 아주 쉽게 연민하고 동정하는 눈빛. 그리고 다 안다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진실한 공감은 언제나 카메라 렌즈나 미디어 스크린 같은 안전장치가 있어야만 혹은 철저하게 나를 배제한 채 한 발짝 떨어져야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예지의 가련한 눈빛에서 투영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나의 사랑이 언제나 유약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나는 절대 나를 뛰어넘는 사랑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내가 품었던 감정들은 값싼 연민이었거나 자기에 도취한 기행이었음을 알라는 듯 영화가 나를 비춘다.

세차장의 물빛을 예삐 보았던 엄마가 그것에 같이 이끌리는 아들을 보며 그것 또한 인간의 '가능'의 영역이 어디부터 어떻게 선 그어져 구분 지어 있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유전과 유산이란 단어에 붙들리게 되면 쉽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나의 부모가 어릴 때 나에게 더 넓고 좋은 세상을 보여줬더라면 나를 의심하고 남을 폄하하는 훈련을 그렇게 혹독히 시키지 않았더라면 하는 원망이 나보다 잘난 것 같은 타인을 보면 어김없이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오르곤 한다. 굳이 애써 불을 때지 않아도 그 원망의 불씨가 마음 깊은 곳에선 영원히 꺼지지 않은 채 타오르는 것처럼 가슴이 쉬이 데워지던 때가 있었다.

그런 원망을 멈추게 된 것은 이해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윽박을 먼저 지르고 어머니가 바꿔야겠다는 말 대신 어차피 소용없어라는 말을 가까이하는 것은, 결국 그들도 그들의 부모에게서 그만큼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였던 것 같다. 그들이 학습한 것 외의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는 일이 그들에겐 가능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부모도 그저 가능한 만큼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 가슴속의 열기가 사그라드는 느낌이 비로소 들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하지만 궁극적으로 딱 자기만큼의 사람으로밖에 기를 수 없다. 가능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무한하지만 누군가에겐 한없이 유한하다.

모든 것이 가짜인 시대, 모든 것이 가공되고 인간의 가장 추잡하고 진실한 면모조차도 콘텐츠로 소비되는 세상이 왔다. 사연과 이야기가 돈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취사선택하고 진실은 끝도 없이 희미해진다. 정보와 네트워크는 방대해졌지만 무서울 만큼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수억 개의 진실이 세계를 떠돈다.

그래서 진실한 이야기를 전달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자들에게 엄청난 잣대가 디밀어져 특히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이야기를 하는 화자에 대해서 더 철저한 검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재밌었어’라고 말하는 나 자신의 발화까지가 이 영화의 완성인 것처럼, 쉬운 공감과 사랑이 누군가에겐 더없는 외면이고 폭력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지의 모든 행동이 완벽히 가짜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확실한 가짜처럼 보이는 것처럼 나만의 진실 속에 사는 일은 비겁하고 이기적이지만 나만은 온전하다.

우린 모두 우리가 ‘가능‘한 영역 안에서만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영역을 좋아하고 안전하게 여긴다. 그곳 이외의 세상은 거짓이고 험한 것이라고 쉽게 치부한다. 차단에 차단을 거쳐 더더욱 가능한 영역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사랑이 없다. 사랑이 메마른다. 사랑에 쉽게 지친다.

그럼에도 달이 뜬다. 달은 늘 손톱만큼 얇아졌다가도 태양만큼 밝은 빛을 뿜는 만월이 된다. 그래서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들을 보는 일이 이 영화를 가득 채우는 게 좋았다. 달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진짜처럼 물들어서 그랬다. 아직 사랑이 있다. 여전히 사랑을 위해 투쟁할 수 있다는 마음이 살아있다.는 결국 뭉근하고 막연할 수밖에 없는 그 메시지가 돌고 돌아 마지막에 남은 말처럼 느껴져서 그랬다.

내가 정의하는 가능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이 내 생이 다하는 날 전에 이루어질지 나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돌을 던지고 싶다. 마음의 웅덩이에 계속해서 파문을 일으키고 싶다. 호루라기를 불어 언제나 깨어있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땅따코

觀眾

尚未填寫簡介。

這位作者的其他 1 篇

看過這部作品嗎?不論同不同意,一句話就夠了。

寫下你的評論

留言

0/500

載入中…